
자크 아탈리 지음, 전경훈 옮김, 책과함께
“바다는 자연의 광대한 저수지다. 이를테면 지구는 바다로 시작되었으니, 바다로 끝나지 않을지 어느 누가 알겠는가!” 쥘 베른이 『해저2만리』에서 쓴 이 문장에서 『바다의 시간』은 시작한다. 우주와 물과 생명, 그리고 인류 최초의 항해, 노와 돛을 이용한 바다의 정복사 등은 자크 아탈리에 의해서 다시 한 번 개괄된다. 바다의 시간 저 아래에서부터 두루두루 바다를 살피는 작업을 하는 셈이다. 물론 목적이 분명한 항해다. 그는 유럽 최고의 석학이고 경제학자다.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바다를 살피고 사회,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경고하고 더 나아가 맨 마지막 챕터 ‘바다를 구하라’처럼 모종이 선동으로까지 나아가려는 것이다.
“아주 원대한 단어를 사용해보자면, 바다는 남자들의 중한 이상향의 기원이다. 남자들의 중대한 이데올로기, 즉 자유라는 이데올로기의 기원이다. 바다는 자유의 영예와 도취와 비극을 가르친다.”
아탈리의 말처럼, 남자들은 바다를 항해했고, 대륙을 발견했고, 발견한 것들을 정복하거나 도륙했으며, 그것으로 부를 일구고 권력을 차지했으며, 경쟁 구도의 정점에 올라섰다. 해양 패권을 장악하지 못한 제국들은 없었다. 바다를 잃었을 때 그들은 쇠락해갔다. 바다 건너에 호들갑스럽게 도착할수록 승리의 역사를 더 길게 쓸 수 있었다. 시각을 바꾸어 보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모든 일은 바다의 입장에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압력이다. 어업과 해운업이 융성하고, 산업을 일구는 일은 모두 인간의 일이다. 이 인간적인 일에는 당연히 이면이 존재한다. 매우 비인간적이며 반자연적인, 혹은 바다 파괴적인 이면의 사건들은 우리가 잘 아는 그것들이다. 재생 불가능한 폐기물이 발생하거나 해저 개발로 인한 바다 환경의 훼손, 지구 온난화를 넘어선 기후 위기의 상황들까지. 아탈리가 인용한 베르나르 지로도의 문장은 그 모든 것을 압축시킨다. “바다는 바닷사람들에게 꿈을 가르치고 항구는 그 꿈을 죽여 버린다.”
바다를 중심에 두고 벌여온 모든 인간적인 활동의 그 끝에서 아탈리 역시 불행한 미래를 진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바다의 역사는 바다에서 본 역사와 만난다. 한쪽은 다른 한쪽을 끝내버릴 수 있다. 바다에서 생명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중략) 생명은 간단하고 회복력이 좋은 형태로, 적어도 바다에서는 적절히 버텼다가 더 다양하고 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아탈리는 이 문장을 쓰고 싶어서 130억 년 전 우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45억 년 전 지구 대기에 포함된 수증기로부터 바다가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쓴 것이다. 인간은 생물의 다양한 변화와 분화의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또한 소멸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경고 그 다음은 격려다. 아탈리는 바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정확히는 바다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으로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더 나은 미래를 전망하고 싶은 인간이다. “우리는 그저 잠시 바다를 관리하는 정원사일 뿐이다. 지구 또한 우주라는 대양에 띄워진 수많은 배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유리병 안에 담긴 편지가 바닷가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일이다. 바다가 육지에 닿아 데려다 놓는 것들은, 콜라병이나 플라스틱 용기 혹은 마스크 같은 것들이다. 한때 인간은 초원과 사막에서 유목의 역사를 쓴 적이 있는 것처럼, 오늘날 인간 삶의 흔적은 바닷가에서 쓰레기로 유목한다. 그 쓰레기들 역시 모두 유리병에 담긴 편지와 같은 것들일지 모르겠다. 인간의 삶이 바다에 배출하는 게 무엇인지 들여다보면 안 되겠느냐는 격정의 편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자크 아탈리 지음, 전경훈 옮김, 책과함께
“바다는 자연의 광대한 저수지다. 이를테면 지구는 바다로 시작되었으니, 바다로 끝나지 않을지 어느 누가 알겠는가!” 쥘 베른이 『해저2만리』에서 쓴 이 문장에서 『바다의 시간』은 시작한다. 우주와 물과 생명, 그리고 인류 최초의 항해, 노와 돛을 이용한 바다의 정복사 등은 자크 아탈리에 의해서 다시 한 번 개괄된다. 바다의 시간 저 아래에서부터 두루두루 바다를 살피는 작업을 하는 셈이다. 물론 목적이 분명한 항해다. 그는 유럽 최고의 석학이고 경제학자다.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바다를 살피고 사회,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경고하고 더 나아가 맨 마지막 챕터 ‘바다를 구하라’처럼 모종이 선동으로까지 나아가려는 것이다.
“아주 원대한 단어를 사용해보자면, 바다는 남자들의 중한 이상향의 기원이다. 남자들의 중대한 이데올로기, 즉 자유라는 이데올로기의 기원이다. 바다는 자유의 영예와 도취와 비극을 가르친다.”
아탈리의 말처럼, 남자들은 바다를 항해했고, 대륙을 발견했고, 발견한 것들을 정복하거나 도륙했으며, 그것으로 부를 일구고 권력을 차지했으며, 경쟁 구도의 정점에 올라섰다. 해양 패권을 장악하지 못한 제국들은 없었다. 바다를 잃었을 때 그들은 쇠락해갔다. 바다 건너에 호들갑스럽게 도착할수록 승리의 역사를 더 길게 쓸 수 있었다. 시각을 바꾸어 보면, 바다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모든 일은 바다의 입장에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압력이다. 어업과 해운업이 융성하고, 산업을 일구는 일은 모두 인간의 일이다. 이 인간적인 일에는 당연히 이면이 존재한다. 매우 비인간적이며 반자연적인, 혹은 바다 파괴적인 이면의 사건들은 우리가 잘 아는 그것들이다. 재생 불가능한 폐기물이 발생하거나 해저 개발로 인한 바다 환경의 훼손, 지구 온난화를 넘어선 기후 위기의 상황들까지. 아탈리가 인용한 베르나르 지로도의 문장은 그 모든 것을 압축시킨다. “바다는 바닷사람들에게 꿈을 가르치고 항구는 그 꿈을 죽여 버린다.”
바다를 중심에 두고 벌여온 모든 인간적인 활동의 그 끝에서 아탈리 역시 불행한 미래를 진단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바다의 역사는 바다에서 본 역사와 만난다. 한쪽은 다른 한쪽을 끝내버릴 수 있다. 바다에서 생명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중략) 생명은 간단하고 회복력이 좋은 형태로, 적어도 바다에서는 적절히 버텼다가 더 다양하고 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아탈리는 이 문장을 쓰고 싶어서 130억 년 전 우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45억 년 전 지구 대기에 포함된 수증기로부터 바다가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쓴 것이다. 인간은 생물의 다양한 변화와 분화의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또한 소멸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경고 그 다음은 격려다. 아탈리는 바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정확히는 바다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으로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더 나은 미래를 전망하고 싶은 인간이다. “우리는 그저 잠시 바다를 관리하는 정원사일 뿐이다. 지구 또한 우주라는 대양에 띄워진 수많은 배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유리병 안에 담긴 편지가 바닷가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일이다. 바다가 육지에 닿아 데려다 놓는 것들은, 콜라병이나 플라스틱 용기 혹은 마스크 같은 것들이다. 한때 인간은 초원과 사막에서 유목의 역사를 쓴 적이 있는 것처럼, 오늘날 인간 삶의 흔적은 바닷가에서 쓰레기로 유목한다. 그 쓰레기들 역시 모두 유리병에 담긴 편지와 같은 것들일지 모르겠다. 인간의 삶이 바다에 배출하는 게 무엇인지 들여다보면 안 되겠느냐는 격정의 편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