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이야기 그림 36] 손


 

지방 행사가 있어 KTX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해 열차에서 열을 맞춰 내리는데 내 뒤에 있던 일행 중 한 분이 나보다 먼저 내리시기에 급한 용무가 있으신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빗나갔다.

 그분이 열차를 내려 플랫폼에 서 계단 위에 있는 내게 손을 뻗었다. 열차의 철조 계단이 높고 불안정해서 다리가 불편한 나를 걱정하신 거다. 세심한 배려에 나도 모르게 그 손을 꼭 잡았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남들이 날 보는 게 싫어 늘 맨 뒤에 서서 사람들이 모두 지나간 후 오르내렸는데 이젠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도움은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아무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오만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건 강한 게 아니라 남도 나에게 기대지 말기를 바라는 이기심이란 걸 고작 두 칸짜리 철조 계단을 내려오면서 깨달았다. 

 건강을 잃고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면 장애를 대하는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싫든 좋든 장애를 지우고 내 일상을 생각하기 힘들어졌다.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당기시오’라고 쓰인 문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마다 내가 이제 달라진 일상을 사는 사람임을 인지한다. 느리고 서툰 나의 동작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는 그걸 깨닫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몸은 비록 많은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문이 하나 열린 느낌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하루 하나 무엇에 인색했는지 생각하는 것이 평등에 다가가는 첫걸음이라고 나는 온몸으로 공부하는 중이다.사람들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주간 인기글





03039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3
TEL.02-735-7088 | FAX.02-730-1240
인터넷신문등록번호: 서울 아03915 | 발행일자 1993.07.01
발행·편집인 박현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현철


월간 함께사는길 × 
서울환경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