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이 시작될 무렵 어느 인터넷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이다. 물론 이보다 더한 악성 댓글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들에 비하면 악성 수준에 들지 않는 댓글이다.
시끄러운 여자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비단 미투운동만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그리고 사립유치원 비리까지 악성 댓글에서 말한 ‘요란한 여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유는 살기 위해서다.
정치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성별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음이 자명한 사실인데 아직 내가 사는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하다. 남녀를 떠나 사는 문제고 삶은 생명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여자 너희가 뭘 아느냐?”부터 시작해 극도의 여성 혐오로 이어지는 사안들을 볼 때마다 절망적인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올봄에 그림책 전문 독립출판사를 시작했다. 책을 만들고 지금까지 큰 고민 없었는데(있어도 없는 듯) 요즘 정체성이 고민이다.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과 책을 만들다 보니 관계가 모호해졌다. 내가 그들을 경력단절 여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래도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국가지원사업에 응모할 때 작품의 기획 의도를 밝히며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으나 그들이 세상에 그렇게 비치길 바란 적은 없었다. 지난 회의 때, 이 부분에 관한 의견이 나왔는데 그런 프레임에 자신들을 가두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혀 주셨다.
내가 이들을 왜 좋아하는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나는 매사 ‘좋은 게 좋은 거고 그게 그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경력단절 여성’이 아니라 ‘경력보유자’라고 말하며 다들 웃었다.
책을 만들며 책이 세상에 어떻게 나오는지 조금 알았다. 그 ‘조금’ 속에 나의 실수의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편집자와 대표 그리고 디자이너와 작가 그들의 입장을 전부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정치가가 되거나 전문출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하나다. 생활 안에서 우리의 신념을 실천하는 일, 바로 사는 일이다.
“요란 떠는 여자들 때문에 시끄럽다.”
미투운동이 시작될 무렵 어느 인터넷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이다. 물론 이보다 더한 악성 댓글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들에 비하면 악성 수준에 들지 않는 댓글이다.
시끄러운 여자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비단 미투운동만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그리고 사립유치원 비리까지 악성 댓글에서 말한 ‘요란한 여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유는 살기 위해서다.
정치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성별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음이 자명한 사실인데 아직 내가 사는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하다. 남녀를 떠나 사는 문제고 삶은 생명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여자 너희가 뭘 아느냐?”부터 시작해 극도의 여성 혐오로 이어지는 사안들을 볼 때마다 절망적인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올봄에 그림책 전문 독립출판사를 시작했다. 책을 만들고 지금까지 큰 고민 없었는데(있어도 없는 듯) 요즘 정체성이 고민이다.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과 책을 만들다 보니 관계가 모호해졌다. 내가 그들을 경력단절 여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래도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국가지원사업에 응모할 때 작품의 기획 의도를 밝히며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단어를 쓰긴 했으나 그들이 세상에 그렇게 비치길 바란 적은 없었다. 지난 회의 때, 이 부분에 관한 의견이 나왔는데 그런 프레임에 자신들을 가두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혀 주셨다.
내가 이들을 왜 좋아하는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나는 매사 ‘좋은 게 좋은 거고 그게 그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경력단절 여성’이 아니라 ‘경력보유자’라고 말하며 다들 웃었다.
책을 만들며 책이 세상에 어떻게 나오는지 조금 알았다. 그 ‘조금’ 속에 나의 실수의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편집자와 대표 그리고 디자이너와 작가 그들의 입장을 전부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정치가가 되거나 전문출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하나다. 생활 안에서 우리의 신념을 실천하는 일, 바로 사는 일이다.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