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하루 종일 뛰놀다가 해가 지면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집안 가득 여름밤 특유의 냄새가 났다. 바로 초록색 나선형 모양을 하고 조용히 타들어가는 모기향 냄새다. 각종 다양하고 편리한 모기퇴치용품이 나와도 이 냄새를 대신할 여름 대표 냄새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옛날 냄새가 느끼고 싶어 슈퍼에서 모기향을 샀다. 양철 꽂이에 꽂아 접시에 담아 모기향을 피워 보았다. 하지만 유년의 여름밤 그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콧구멍이 까매지도록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난닝구를 입은 아버지가 비닐 장판을 걸레질 하신다. 마당 구석에서 모기향이 타고 있고 걸레질을 마친 아버지가 이부자리를 곱게 깔아주신다. 곧이어 형광등이 꺼지면 모두 잠자리에 들라는 신호다.
우리 삼형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불로 돌진한다. 우리가 잠이 들면 난닝구 차림의 아버지는 우리 곁에서 모기향에도 죽지 않는 모기를 파리채로 잡고 계셨다. 모기를 잡는 아버지의 진지한 얼굴을 텔레비전만이 조용히 비추고 있다. 우리가 깰까봐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고 저녁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 모기도 잡고 파리도 잡고 뉴스도 보면서 병아리 같은 새끼 셋이 잠든 모습을 설핏 곁눈으로 바라보셨을 아버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지나간 정취를 느끼자고 모기향을 켜고 앉아 있자니 기대했던 냄새가 나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111년 만의 폭염이라 감히 상상하기 힘든 수치까지 치솟는 올해 여름.
곁에 아무도 없는 여름밤이다. 모기를 잡아주며 지켜야할 사람도 없고 더위를 견디며 책임을 다해야할 존재도 없는 내게 유년의 모기향은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여름 특유의 냄새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 밖에서 친구들과 바라보던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흔하게 별을 볼 수 있어 여름밤이 좋았다. 흔하디흔한 게 별이니까 귀하게 여겨질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별이 무성한 여름의 밤하늘, 젊고 다정했던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매일매일 자라나던 나의 형제들과 친구들.
어딘가에 그 시절이 아직도 남아 늙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은 상태로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름밤의 정취는 이제 어디로 갔을까?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에는 비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날에는 휘날리는 깃발처럼 기쁜 날에는 떠나가는 기차처럼 서글픈 날에는 난 거기에 가지 파란하늘이 열린 곳 태양이 기우는 저 언덕 너머로 난 거기에 가지 초록색 웃음을 찾아내 가슴 속까지 깨끗한 바람이 불게
어떤 날의 「그런 날에는」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
어릴 적 하루 종일 뛰놀다가 해가 지면 마지못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 집안 가득 여름밤 특유의 냄새가 났다. 바로 초록색 나선형 모양을 하고 조용히 타들어가는 모기향 냄새다. 각종 다양하고 편리한 모기퇴치용품이 나와도 이 냄새를 대신할 여름 대표 냄새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옛날 냄새가 느끼고 싶어 슈퍼에서 모기향을 샀다. 양철 꽂이에 꽂아 접시에 담아 모기향을 피워 보았다. 하지만 유년의 여름밤 그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콧구멍이 까매지도록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난닝구를 입은 아버지가 비닐 장판을 걸레질 하신다. 마당 구석에서 모기향이 타고 있고 걸레질을 마친 아버지가 이부자리를 곱게 깔아주신다. 곧이어 형광등이 꺼지면 모두 잠자리에 들라는 신호다.
우리 삼형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불로 돌진한다. 우리가 잠이 들면 난닝구 차림의 아버지는 우리 곁에서 모기향에도 죽지 않는 모기를 파리채로 잡고 계셨다. 모기를 잡는 아버지의 진지한 얼굴을 텔레비전만이 조용히 비추고 있다. 우리가 깰까봐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고 저녁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 모기도 잡고 파리도 잡고 뉴스도 보면서 병아리 같은 새끼 셋이 잠든 모습을 설핏 곁눈으로 바라보셨을 아버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지나간 정취를 느끼자고 모기향을 켜고 앉아 있자니 기대했던 냄새가 나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111년 만의 폭염이라 감히 상상하기 힘든 수치까지 치솟는 올해 여름.
곁에 아무도 없는 여름밤이다. 모기를 잡아주며 지켜야할 사람도 없고 더위를 견디며 책임을 다해야할 존재도 없는 내게 유년의 모기향은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여름 특유의 냄새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 밖에서 친구들과 바라보던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흔하게 별을 볼 수 있어 여름밤이 좋았다. 흔하디흔한 게 별이니까 귀하게 여겨질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별이 무성한 여름의 밤하늘, 젊고 다정했던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매일매일 자라나던 나의 형제들과 친구들.
어딘가에 그 시절이 아직도 남아 늙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은 상태로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름밤의 정취는 이제 어디로 갔을까?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에는 비가 끝도 없이 쏟아지는 날에는 휘날리는 깃발처럼 기쁜 날에는 떠나가는 기차처럼 서글픈 날에는 난 거기에 가지 파란하늘이 열린 곳 태양이 기우는 저 언덕 너머로 난 거기에 가지 초록색 웃음을 찾아내 가슴 속까지 깨끗한 바람이 불게
어떤 날의 「그런 날에는」
글・그림 / 고정순 어린이그림책 작가이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