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텍스트[에코텍스트 137] 늑대와 개의 시간

살아남은 것들의 우월성 혹은 진화의 결과로서 현존하는 생명체. 그러한 과정들이 농축된 표현, 생존경쟁, 우리는 어쩌면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출발점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체의 삶과 생존을 둘러싼 인간과 동물, 식물에게서 중요한 것은 현재 이대로 상태에서의 문제다. 여러 가지 점에서, 이것은 19세기 초반에 허버트 스펜서가 표현하고 찰스 다윈이 받아들인 대로 ‘생존경쟁’이다. 하지만 이때의 경쟁은 ‘싸움(fight)’이 아니라 역경을 헤쳐 나간다는 의미의 ‘분투(struggle)’가 맞다. 그리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생명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개 분투보다는 적절한 협력 관계나 협동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공생은 바로 이런 협동을 말한다.” 싸워서 이긴 것들의 생존인가 혹은 살기 위해 분투하되 경쟁 생명체의 절멸이 아니라 그것과의 협동을 도모하는 생존인가. 그 답은 ‘늑대와 개의 시간’에서 찾아보자. 

오늘날 인간과 개의 공동체가 공생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한데, 이것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런 정도의 합리적 상상과 과학적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늑대가 석기 시대의 인간 집단에 접근해서 인간의 사냥 노획물로부터 이익을 보았다는 말이다. 늑대는 자칼이 사자에게 하는 것과 비슷하게 ‘식객(공생자)’으로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몸집이 작고 대체로 쌍을 이루고 사는 자칼과 달리 석기 시대의 늑대 집단은 컸고 이익을 보려고 하는 상대로서 ‘그들의’ 인간을 다른 늑대 무리로부터 충분히 방어해줄 만큼 강했다. 이 때문에 더 긴밀한 결합이 가능했다. 이 결합은 인간 집단에 유익했다. 그들을 따라온 늑대 무리는 늑대 본성에 따라 경비견처럼 반응했고 무엇보다 밤에 위협이 되는 위험 앞에서 인간에게 경보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론은 수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개-늑대라고 부를 만한 생태적 유형의 늑대가 저절로 나타났다는 데에 이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의도적인 훈련의 결과로 늑대에서 개로 변모한 것이 아니라 늑대의 입장에서 매우 능동적인 변화의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공생의 관점에서 볼 때, 도시의 미래 가능성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자기의 생존 터전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도시의 운명이나 도시의 생존 가능성 혹은 자연에 위협적인 공동생활로서의 도시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곧잘 야생의 포유류가 등장하는 도심의 풍경은 낯설지 않다. 멧돼지의 출몰 소식, 고리나와 곰의 도시 활보, 매서운 독수리의 도심 비행 등은 곧잘 ‘난동’이나 ‘공포’ 등의 언어로 표현된다. “현재 도심에 매가 늘어난 것은 효과적인 보호가 동물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20~30년 전만해도 멸종 위기에 처했던 종이 도심의 새 생활을 통해 살아난다는 것에 대한 지극히 인상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 (…) 최고의 기회는 자연친화적인 주민이 사는 도시에서 나온다.” 

개와 함께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정보가 아니라 어떤 길들이기의 결과라면, 도시의 미래 역시 자연스럽고도 조심스럽게 새로 구성돼 보아야 할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시(민)와 야생(동물)의 생존경쟁으로 어느 것 하나의 절멸과 진화를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미래지향적인 큰 그림 아니겠는가.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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