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은 거대한 시계 장치와 유사하다. 모든 것은 일목요연하게 질서를 이루고 있고 그것들이 서로 맞물려 있으며, 모든 존재에게는 정해진 자리와 역할이 있다. (……) 인간이 자연에 손을 대면 균형이 깨지면서 엇박자가 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인위적으로 외래 어종을 방출하면 그 지역 사슴 개체수가 급감한다.”
서문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늑대를 등장시켜야 한다. 이를 테면 19세기 미국의 옐로스톤국립공원에서 시작된 늑대 멸절 계획과 같은 것 말이다. 농가 가축을 위협하던 이 늑대 무리들을 제거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아마도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무엇을 소멸시키기 위한 계획에서는 인간은 좌절과 실패를 드물게 경험하는 편이다. 대신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광범위한 패배를 기록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것은 늑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늑대를 제외한 다른 종들이 엄청나게 번식을 하는 바람에 나무와 풀을 다 먹어치워 버려 땅이 황폐해졌고, 황폐해진 땅에 새들이 날아들지 않았으며, 땅의 황폐화는 강의 황폐화로 연결되었고, 지반을 보호하는 식생이 사라져 잦은 홍수와 전에 없던 지반 침식으로 인한 지형의 변화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늑대는 다시 등장해야만 했다.
“1995년 드디어 미국 정부는 생태계의 균형을 복원시키기 위해 캐나다에서 늑대를 포획하여 옐로스톤국립공원에 방사했다.” 이렇게 작은 변화로 인해 생태계 전체의 먹이사슬에 하향식 연쇄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두고 ‘영양 폭포’ 혹은 ‘영양 종속’이라고 부른다. 사실 우리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의 흥망성쇠에 무엇 하나 손대지 마라. 그것이 곧 우리의 흥망성쇠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기술된 생태계 전체의 촘촘한 네트워크가 흥미롭게 읽힌다면 그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곧 우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가령, 나무는 진딧물과 나무좀의 공격 외에도 개미에게도 무수히 시달리며 개미의 생활은 곧 나무의 생로병사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나무의 흥망성쇠에 기대지 않고서는 우리 세계의 빛과 그림자를 가늠할 수 없으며, 그러한 사실을 이제 우리는 직관적으로도 감지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목재사용의 감소는 에너지 사용량의 감소이며, 그것은 기후변화의 감소이고, 결국 건강하고 적응력이 높은 숲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공식은 상식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결국 이런 종류의 얘기들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인류 진화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의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우리는 곧잘 함정에 빠질 때가 있다. 빛나는 문명을 누리고 있는 지금, 이제 우리의 지적 발전은 완성단계에 이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종류의 오만한 함정 말이다. 인간은 곧 만물의 영장이라는 류의 명제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면 자연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의 막강한 무기인 지적 능력이 인간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 미국 연구 팀에서 인간과 원숭이 세포의 자기 파괴 프로그램을 비교했다. 자기 파괴 프로그램은 노화 혹은 손상된 세포를 파괴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원숭이의 경우 인간보다 자기 정화 메커니즘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지능을 얻은 셈이다. 인간이 사망하는 주 원인 중 하나가 암이다. 그런데 자기 파괴 프로그램은 이 암세포를 파괴한다. 원숭이는 암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왜 암에 걸리고 원숭이는 왜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일까? 사고력을 얻은 대가가 이토록 혹독해야만 하는 걸가?”
자연의 거대하고 깊고 오래된 네트워크를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을 현실화하는 것이 한 5만년짜리 거대한 프로젝트라면, 우리가 원숭이에게서 배워 와야 할 단 하나의 것은 어쩌면 바로 저 자기 파괴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겠다. 잘난 체 하는 인간에서 반성하는 인간으로의 전환이 이 거대한 자연의 네트워크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
“자연은 거대한 시계 장치와 유사하다. 모든 것은 일목요연하게 질서를 이루고 있고 그것들이 서로 맞물려 있으며, 모든 존재에게는 정해진 자리와 역할이 있다. (……) 인간이 자연에 손을 대면 균형이 깨지면서 엇박자가 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인위적으로 외래 어종을 방출하면 그 지역 사슴 개체수가 급감한다.”
서문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늑대를 등장시켜야 한다. 이를 테면 19세기 미국의 옐로스톤국립공원에서 시작된 늑대 멸절 계획과 같은 것 말이다. 농가 가축을 위협하던 이 늑대 무리들을 제거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아마도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무엇을 소멸시키기 위한 계획에서는 인간은 좌절과 실패를 드물게 경험하는 편이다. 대신 상상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광범위한 패배를 기록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것은 늑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는데, 늑대를 제외한 다른 종들이 엄청나게 번식을 하는 바람에 나무와 풀을 다 먹어치워 버려 땅이 황폐해졌고, 황폐해진 땅에 새들이 날아들지 않았으며, 땅의 황폐화는 강의 황폐화로 연결되었고, 지반을 보호하는 식생이 사라져 잦은 홍수와 전에 없던 지반 침식으로 인한 지형의 변화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결국 늑대는 다시 등장해야만 했다.
“1995년 드디어 미국 정부는 생태계의 균형을 복원시키기 위해 캐나다에서 늑대를 포획하여 옐로스톤국립공원에 방사했다.” 이렇게 작은 변화로 인해 생태계 전체의 먹이사슬에 하향식 연쇄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두고 ‘영양 폭포’ 혹은 ‘영양 종속’이라고 부른다. 사실 우리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의 흥망성쇠에 무엇 하나 손대지 마라. 그것이 곧 우리의 흥망성쇠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기술된 생태계 전체의 촘촘한 네트워크가 흥미롭게 읽힌다면 그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곧 우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가령, 나무는 진딧물과 나무좀의 공격 외에도 개미에게도 무수히 시달리며 개미의 생활은 곧 나무의 생로병사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나무의 흥망성쇠에 기대지 않고서는 우리 세계의 빛과 그림자를 가늠할 수 없으며, 그러한 사실을 이제 우리는 직관적으로도 감지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목재사용의 감소는 에너지 사용량의 감소이며, 그것은 기후변화의 감소이고, 결국 건강하고 적응력이 높은 숲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공식은 상식의 범위 안에 들어와 있다. 그러므로 결국 이런 종류의 얘기들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인류 진화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으며, 우리의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우리는 곧잘 함정에 빠질 때가 있다. 빛나는 문명을 누리고 있는 지금, 이제 우리의 지적 발전은 완성단계에 이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종류의 오만한 함정 말이다. 인간은 곧 만물의 영장이라는 류의 명제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면 자연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의 막강한 무기인 지적 능력이 인간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 미국 연구 팀에서 인간과 원숭이 세포의 자기 파괴 프로그램을 비교했다. 자기 파괴 프로그램은 노화 혹은 손상된 세포를 파괴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원숭이의 경우 인간보다 자기 정화 메커니즘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지능을 얻은 셈이다. 인간이 사망하는 주 원인 중 하나가 암이다. 그런데 자기 파괴 프로그램은 이 암세포를 파괴한다. 원숭이는 암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왜 암에 걸리고 원숭이는 왜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일까? 사고력을 얻은 대가가 이토록 혹독해야만 하는 걸가?”
자연의 거대하고 깊고 오래된 네트워크를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을 현실화하는 것이 한 5만년짜리 거대한 프로젝트라면, 우리가 원숭이에게서 배워 와야 할 단 하나의 것은 어쩌면 바로 저 자기 파괴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겠다. 잘난 체 하는 인간에서 반성하는 인간으로의 전환이 이 거대한 자연의 네트워크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글 | 조은영 무가지로 발행되는 서평 전문 잡지 『텍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