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즐거운 동행 14] 불어라 녹색바람 빛나라 반딧불이야

인천환경운동연합 청소년 모임 ‘녹색바람’

 

아이들을 따라 나선 길, 우뚝 솟은 아파트와 청소년수련관을 뒤로 하고 장수천을 따라 나무가 우거진 길과 연못을 지나자 굳게 닫힌 철문이 보인다. 인솔자가 철문을 연 순간 황금물결이 일렁인다. 고개를 돌려 둘러봐야 할 정도로 논이 제법 넓다. “이거 다 우리가 농사지은 것들이에요.” 쌀알을 주렁주렁 매달고 고개 숙인 벼들! 아이들이 우쭐댈만하다. 이 논의 농부들은 인천환경연합 청소년 회원 모임 ‘녹색바람’ 아이들이다. 

 

반디논의 작은 농부들, 인천환경연합 녹색바람  

인천환경연합 녹색바람은 중고등학생들의 모임으로 매년 신청자를 모집해 그해 활동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올해 8년째로 접어든 녹색바람 활동은 초창기 연안습지를 중심으로 활동해오다가 2012년부터 논 습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20여 명이 참여해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아침에 모여 농사를 짓고 논 습지 생물종 조사를 진행한다.  

비밀의 정원 같은 이곳의 정식이름은 반디논. 반딧불이가 사는 논이란 뜻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이 논에 반딧불이가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아직 반딧불이를 보지 못했지만 녹색바람 아이들에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 이곳에 해가 지면 장수천을 따라 반짝반짝 별들이 움직였다는, 그 별이 반딧불이였다는 이야기다. 지금이야 인천대공원과 청소년수련관, 아파트 등이 들어섰지만 예전에 장수천 일대는 논이었다. 장수천 일대가 개발되자 반딧불이도 자취를 감췄다.  

이곳도 피크닉센터나 실내수영장 개발 계획들이 오가며 하마터면 사라질 뻔했지만 다행히 인천환경연합의 노력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장수천 반딧불이의 전설을 현실로 만들겠다며 아이들과 함께 버려졌던 땅을 다시 논 습지로 만들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농사라고 소꿉놀이 정도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24절기에 따라 전통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소금물로 볍씨소독하고 손으로 모를 내고 벼 베기도 낫을 들고 한다. 전통농법이 처음부터 쉬웠을 리 없다. 초기 몇 해는 농사를 망쳤다. 지금도 농사일은 고되다. 볍씨를 담은 양파자루를 소금물에 몇 번이고 담갔다 빼느라 팔이 빠질 것 같고 모내기 할 땐 허리가 끊어질 것도 같단다. 하지만 제 손으로 일군 논에 하나 둘 생물들이 들어와 사는 게 눈으로 보이고 또 볍씨에 싹이 나고 논에서 쑥쑥 자라 벼꽃이 피고 쌀알이 맺는 걸 볼 때면 재미를 넘어선 감동을 맛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도 반디논에 관심을 가졌다. 도심에서 논을 보는 것도 신기한데 전통농법으로 한다고 하니 신기할 수밖에. 때문에 반디논에 모내기와 벼 베기하는 날이면 출입이 통제됐던 이곳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아이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거나 벼 베기 체험도 하고 아이들이 농사지은 쌀도 나눈다. 지역 행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처음에 이들의 활동을 시큰둥하게 여기던 단체도 함께 하자고 손 내밀고 매년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벼 베는 날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한 사람당 한 번씩 벼를 벴더니 수확이 다 끝나버릴 정도였다고 인천환경연합 강숙현 사무처장이 귀띔한다. 쓸모가 없다며 없애려던 논 습지가 인천의 보물이 된 것이다. 

 

뭘 좀 아는 아이들 

둠벙에는 어떤 생물들이 살까?

 

아이들은 올해 마지막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논습지 생물종 조사도 농사 못지않게 녹색바람 아이들에게 중요한 활동이다. 벼 베기를 앞두고 논에 물을 뺀 상태라 생물종 조사는 논 옆 둠벙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마련한 물 웅덩이인 둠벙 역시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고 논에 살던 생물들도 물을 빼면 둠벙으로 옮겨간다고 강 처장은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아이들이 둠벙 안에 채집도구를 넣고 휘이휘이 저어 올린다. 신지민(중3) 양 들채에 작은 물고기가 올라왔다. 미꾸라지다. “어렸을 때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자랐어요. 그때 기억이 참 좋아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평소에는 도로에 차들 달리는 모습만 보다가 여기선 논도 보고 곤충도 볼 수 있어서 좋아요.”라는 지민이는 벌써 3년째 녹색바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동엽(고 1) 군도 다양한 생물들을 채집했다. “얘는 물자라에요. 깨끗한 물에서만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옆에 얘는 된장잠자리 유충, 밀잠자리 유충, 우렁이, 민물새우. 아 여기 꼬마둥글물벌레도 있는데 우리처럼 농약 안치는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종이에요. 그리고 얘는 이름이 뭐였더라. 아 왕잠자리 유충이에요. 자세히 보면 턱이 엄청 나와 있어요. 먹이를 잡을 때 뱀처럼 턱이 크게 벌어진대요.” 동엽이는 활동하면서 늘 만났던 생물이지만 볼 때마다 반갑고 신기하다. 

장난기 넘치는 임채윤(중3) 군은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곤충 좀 아는 친구’로 통한단다. 아직 반딧불이를 보지는 못했지만 채윤이가 반디논에서 관찰한 종만 20여 종이다. 반디논에선 일상적으로 만나는 물자라나 꼬마둥글물벌레 등은 흙조차 밟기 힘든 도시 아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신기할 수밖에 없다. 채윤이에게 반디논에 사는 생물 이야기 하나 부탁하자 우렁이 한 마리를 집어 들었다. “이 우렁이는 토종우렁이가 아니에요. 원래 겨울엔 추워서 죽는다는데 이듬해 모를 심을 때까지도 살아있어요. 우리 논에 잡초 제거하라고 넣었는데 어린모까지 먹어서 골치에요. 기후변화 때문에 따뜻해져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거래요.” 논에서 아이들은 기후변화까지 읽어낸다.  

아이들 옆에서 아저씨 한 분이 열심이다. 하경이 아빠다. 올해 처음 참여한 딸이 걱정돼 활동할 때마다 따라나서지만 사실 하경이 아빠 자신이 활동을 즐긴다. “저도 공부하고 있어요. 도심지에서 자라서 이런 거 잘 모르거든요.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짓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벼 베는 날을 엄청 기대하고 있어요.”   

 

불어라 녹색바람 빛나라 반딧불이

아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지도해온 강 처장은 아이들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낀다. “처음 만날 때랑 활동 끝날 때쯤 엄청 달라요. 아이들에게 자연은 하나라는 것, 살아있는 모든 생물이 소중하고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는 것, 더불어 농사짓는 이들의 수고로움을 알려주고 싶은데 어느 정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한 번 참여했던 아이는 또 참여하고 친구나 가족까지 데리고 와요. 어쩌면 아이들이 함께 반디논을 지킨 거예요.” 

녹색바람 아이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종은 반딧불이이다. 2년 전에 이 일대에 반딧불이 유충을 방사한 적도 있지만 주변 여건이 아직 좋지 않아서인지 대부분 터를 잡지 못하고 사라지고 일부만 남았단다. “제발 지켜야 할 곳은 지켰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건물 짓고 매립하면 경제적 가치가 눈으로 보이니깐 개발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숨겨진 가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걸 알고 제발 개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현정(중2) 양처럼 아이들의 기다림과 아쉬움은 한 번 훼손된 서식처를 되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논 습지와 서식처가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변해간다. 

모내기할 때쯤 피어서 벼가 익을 때까지 100일을 붉게 핀다는 목백일홍 꽃이 졌다. 다음 번 모임에서 벼 베기를 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심고 자연이 키워준 밥맛은 얼마나 달까. 그 쌀밥 먹고 아이들은 또 얼마나 자랄까. 한뼘 큰 아이들 머리 위로 반딧불이 총총 뜰 날이 머지않았다. 

 

글 | 박은수 기자  

사진 | 이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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