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볕뉘 읽기 111] 최승호의 시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

 
시화호에선 악취가 난다. 관료들에게서도 악취가 난다. 구역질, 두통, 발열, 
숨막힘, 마을사람들은 떠났다. 개펄은 거대한 조개무덤으로 변해 버렸다. 
쩍 벌어진 조개껍질 위로 허옇게 소금바람이 분다. 갯지렁이들도 떠났다. 
도요새들은 항로를 바꾸었다.
 
무력감에서도 악취는 난다. 산 송장들, 시화호 바닥에 누워 공장 폐수와 부패한 관료들의 숙변을 먹는 산 송장들, 이것은 그로테스크한 나라의 풍경인가. 
시화호라는 거대한 변기를 만드느라 엄청난 돈을 배설했다.
달마는 시화호에 오지 않는다. 시화호에 달이 뜬다. 누가 시화호를 죽였는가? 누가 죽은 시화호를 딸처럼 부둥켜안고 먼 바다로 걸어나가며 울겠는가. 
 
나는 무력한 사람이다. 절망의 벙어리, 그래도 세금은 낸다. 세금으로 시화호를 죽였다. 살인청부자?
 
- 시집 『그로테스크』(1999, 민음사) 중에서 
 
 
이 작품은 1990년대 후반에 발표되었습니다. 그 시절 시화호는 담수호를 만든다는 미명 아래 바닷물의 드나듬을 가로막아 그야말로 죽음의 호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최승호 시인은 그렇게 죽음의 호수가 되어버린 시화호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마침내 담수호계획이 취소되고 시화호에 다시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시화호의 상태는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이 시화호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해양 환경개발이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가 입증되었습니다.
 
최승호 시인은 이 작품에서 단지 환경 개발의 욕망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불법개발을 묵인해주고 뒷돈을 챙긴 관료들의 부패를 ‘악취가 난다’고 일갈하고 있으나 그가 더 주목하는 잘못은 국민들의 ‘무력감’입니다.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난개발의 폐해를 짐작하면서도 외면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국민들의 태도를 ‘산 송장’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시화호를 죽인 것은 바로 무력한 국민들의 무관심이라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해결사로 나서기를 기대하는 특별한 존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달마는 시화호에 오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종교단체도, 시민단체도, 그리고 환경전문가도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 역할을 감당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참담하게도 국민들은 ‘시화호라는 거대한 변기를 만드느라 엄청난 돈을 배설’했을 따름입니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시화호를 죽’이는데 일조했으니 나를 비롯한 우리 국민들은 ‘살인청부자’라는 지탄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게다가 우리들은 망각을 생존의 강력한 방어기제로 삼아서 시화호 이후로 새만금과 제주도 강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양 개발의 폐해를 방조하고만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니 망각의 병이 도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직시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화호 바닥에 누워서 공장 폐수와 부패한 관료들의 숙변을 먹는 산 송장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우리와 자손들의 명줄을 끊어놓는 악행을 장려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글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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