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자연은 인간을 위한 환경일 뿐이다.’ ‘환경’이라는 낱말 속에는 그런 뜻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뜻을 새기면서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고 훼손해 왔습니다. 관상용으로 어항에 물고기를 가두어놓고 즐기는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바다’나 ‘어떤 물고기’라고 말해버린 것도 자연이나 자연의 생명체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인간인 나의 ‘욕망’이나 ‘기준’일 따름입니다. 인간인 나의 기준은 이기적이고 편협하므로 물고기가 ‘바다에서와 똑같이 헤엄친다’고 단정해버립니다. 그렇게 단정해버리고 나니 조금 미안한지 가끔은 물고기가 ‘어항 밖으로 걸어 나가는 상상이라도 하는 듯하’다고 말해봅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본심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 본심이란 ‘물고기가 제발 어떤 어항 속에서 / 대대로 갇혀 지내길 나지막이 빌어본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 속에 가두어 놓는 것이 본심인 셈입니다. 그런 본심을 시의 제목으로 정해서 ‘착한 소원’이라고 말해봅니다. 산을 깎아서 골프장을 만들고, 바닷물을 가두어 인공호수를 만들어놓고도 같은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드는 세상을 ‘이 세계의 평화’라고 단정해버리기까지 합니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만들어놓고 ‘평화’를 운운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시인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착한 소원’이라고 규정하면서 우리들의 반성을 촉구했으나 반성의 효과는 미미할 듯합니다. 제주도에 넘쳐나는 인구와 개발과 자본들은 ‘착한 소원’의 부작용을 조만간 토해낼 것입니다. 인간이 토해낸 이기적인 오물들로 넘쳐나는 제주도의 자연을 어떻게 원상회복시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