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볕뉘 읽기 109] 고진하의 시 「첫 불」

손수 만든 아궁이 속으로 마른 장작을 밀어넣고
첫 불!을 당겼어
오래 허기진 듯 아궁이는
장작에 불기 시작한 불을 쭉쭉 빨아들였지
얼쑤! 신이 난 나는
불길이 빨려들어가는
불의 자궁 속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하긴, 모든 불이 첫 불이지
저 구들방에 누가 들어가 지지든
자글자글 끓는 저 방에서
혼자 지지든 누구랑 붙어 지지든
매일 밤이 
첫날밤이지
신혼이지
(암, 그렇고 말고!)
 
- 시집 『명랑의 둘레』(문학동네, 2015) 중에서
 
조해일이라는 소설가의 데뷔작인데요. 「매일 죽는 사람」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단편소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시작도 특이하죠. 주인공의 직업은 영화 엑스트라입니다. 영화에서 그가 주로 맡는 역할은 죽는 사람의 배역입니다.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그는 점점 자기가 실제로 죽어가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세상에서 제대로 풀리는 일도 별로 없는 루저인 그는 연기를 하다가 죽음에 사로잡히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느낌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점점 가혹해지는 삶의 환경과 각박한 인심으로 하루하루 사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살아가기가 어려워질수록 새해를 맞이하는 기대감도 각별하고 절실해지는 듯합니다. 새해의 일출을 맞이하는 마음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첫 해’을 맞이하는 마음은 ‘첫 불’을 켜는 마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불을 피우는 마음은 소망을 품는 마음과도 다를 바 없어서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마음이 모두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데 불은 중요한 보람의 속성을 일깨웁니다. 불은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해가 그렇고 작은 촛불도 그렇지만 불은 자기를 태워서 남에게 온기를 베푸는 속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안도현 시인의 「연탄불」이라는 시도 그렇죠.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내용이 그런 불의 속성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새해의 첫 소망을 가족과 이웃에게 따듯한 사랑을 나누어주는 자연의 ‘첫 불’과 ‘첫 해’의 이치로 품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불이 첫 불이지’라는 고진하 시인의 말처럼 첫사랑을 품을 때의 설렘으로 삶의 희망을 실천해가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경호 문학평론가, 『상처학교의 시인』 저자 leekh7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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